이 목장성지는 적의 내습을 방어하기 위한 성은 아니다. 목장의 말이 울안 밖으로 달아나는 것을 막기 위해 쌓은 성이다.
동래부지에 이 목장성이 기록돼 있는데 그에 의하면「목장성은 세곳이 있다. 그 하나는 엄광산 산기슭 강변에서 석성산 산기슭까지의 길이 10리의 성이다. 또 하나는 황령산 산기슭에서 남천강변까지의 길이 15리 정도의 성이다. 지금은 모두 허물어 졌다」고 했다.
이로 미루어 보아 오래전의 지난날은 부산의 산에 많은 목마장이 있었다는 사실과 그 목마장이 있었던 지역을 짐작할 수 있다. 이 목마장은 국마장이라고도 했는데 목마성은 목책으로도 하고 석축으로도 한 것 같다.
석축으로 된 목마성은 지금의 대티고개에서 시작하여 당리 뒷산까지 약 3㎞ 이어진 것이 있었는데 비교적 완전한 형태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곳은 괴정동 뒷산 한 곳이다. 두께 8척에 높이 8∼12척의 단단한 성이다. 성의 윗부분의 높이만 맞추어 쌓았음으로 지형에 따라 높이가 일정치 않다.
괴정동의 희망촌 일대를 말골(馬谷)이라고 한 일이나 괴정리를 옛날에는 목장리라 한것으로도 그날을 알 수 있다.
이 목마장은 동래부지의 목장성 기록으로 보아 그 범위가 아주 넓었던 것 같다.
문화재명 | 현 황 | 시 대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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목장성지 | 조선시대 |