정운(鄭運)은 1543년(중종38) 훈련원 참군(訓練院參軍) 응정(應禎)의 아들로 태어났다. 본관은 하동(河東)이며 자는 창진(昌辰)이었다. 영암(靈巖)이 본 고향이다. 무과에 급제하여 거산도찰방(居山道察訪), 웅천현감(熊川縣監)을 거쳐 제주 판관(濟州 判官)때 목사(牧使)와의 불화로 파직되었다. 1592년(선조 25) 임진왜란때는 전라좌도 녹도(鹿島) 만호(萬戶)에 기용돼 있었다. 이 녹도 만호일 때의 1592년 9월 1일(음력) 이순신장군이 부산포해전에서 일본 병선 400여척과 싸워서 100여척을 격파할 때 이순신 장군의 우부장(右部將)으로 군사의 맨 앞장서 분전하다가 적탄을 맞고 순절하였다. 이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과 지역주민들이 매년 음력 9월 1일 정운공순의비에서 향사를 지내고 있다. 다대동 산144번지(몰운대 내)에 위치한 정운공순의비는 부산광역시지정기념물 제20호로 되어 있다.